Kyuseok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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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klin, Abbott, Mahone, 그리고 Bosch

과학의 영역에서 판단의 근거는 ‘숫자’다. ‘가설 A가 입증되는 이유는 그림 K에 나타난 물리량 J의 변위가 Y 값 이하 또는 이상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지금 이야기하는 내용은 정량화가 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그러니, 이것은 순전히 개인의 감상에 속한 영역이고, 판단의 근거는 본인의 감상평에 있다.


Alexander Conklin (Chris Cooper, The Bourne Identity, 2002)

맷 데이먼의 액션 연기를 인정사정없이 흔들리는 hand-held로 담아낸 The Bourne Series는 첫 편의 개봉으로부터 21년이 흐른 지금에도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제껏 다섯 편이 개봉했으나, 많은 사람이 네 번째 편 The Bourne Legacy(2012)와 다섯 번째 편인 Jason Bourne(2016)을 제외한 첫 세 편을 진정한 ‘본 시리즈’ 삼부작으로 칭하기도 한다.

‘본 시리즈’의 미덕은 기존의 첩보/액션물에서 답습하던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수트를 차려입은 스파이가 미녀 여주인공과 얽히면서 악의 축을 개박살 낸다’라는 공식에서 멋지게 벗어난 점에 있다. 아니 오히려 요소 요소 같은 공식에서 정반대의 변수들을 차용하고 있다. 게다가 영화를 통해 ‘굿 윌 헌팅’ 때와 그다지 많이 다르지 않은 이십여 년 전 맷 데이먼의 현란한 액션 연기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맷 데이먼이 끌고 가는 영화이긴 하나, 개인적으로 나는 이 영화의 완성은 첫 편과 둘째 편에 등장한 Alexander Conklin과 (Chris Cooper) Ward Abbott (Bryan Cox)의 명연기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동시에 다섯 번째 편을 진정한 ‘본 시리즈’에 포함하지 못하겠다는 이유 역시 Tommy Lee Jones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Ward Abbott (Bryan Cox, The Bourne Supremacy, 2004)


여기, 또 다른 남자가 있다. Alexander Mahone (William Fichtner, Prison Break). 약에 절어 사는 연방 요원이긴 하나 본인의 일 만큼은 다른 누구보다 잘 해낸다. 본인의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잘하지만, 사교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인물이다. 그저 약과 일. 둘만이 세상에 존재한다. Conklin과 Abbott이 극중 배역에 찰떡으로 녹아들어 극과 배역 사이의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극한의 궁합을 보여주었다면 Mahone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매력을 보여준다. 소위 ‘전문가’로 내세워지는 수많은 캐릭터가 있지만, 야누스의 얼굴처럼 흑과 백을 한 얼굴에 공존시킨 채 그 둘 사이의 마찰 속에서 소모되어 가는 개인적 고통을 절묘하게 표현한 점에서 나는 Mahone에 커다란 박수를 보낸다.

Alexander Mahone (William Fichtner, Prison Break, 2006)


그런 면에서 Harry Bosch (Titus Welliver)는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매력적인 요소들을 골고루 담아내고 있다. 그저 이곳저곳의 미덕을 적당히 하나씩 가져와 버무려놓은 것을 시청자 앞에 던져둔 것이 아니라, Harry Bosch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아!’ 하고 받아들이게 만든다. 숱하게 본 미국 드라마의 어딘가에서 분명히 본 그때 그 사람. 주연은 분명히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그때 그 사람이 로스앤젤레스 3급 형사가 되어 자기 일을 묵묵히 그리고 동시에 엄청나게 잘, 그러나 많은 경우에 주변과의 마찰을 일으키면서 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마찰은 많은 경우 인간 대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모두 그러하듯, 항상 마음 한편에 담고 살아가는 사람 대 사람 사이의 관계 말이다. 험한 소리 하기 싫어서 차마 내치지 못하는 직장의 저 사람. 역시 비슷하거나 같은 이유로 차마 싫은 소리 하지 못했던 오랜 친구. 동네 주민. 그런 무수한 관계들 말이다.

The Wire (HBO, 2002-2008)의 팬이라면 Lance Reddick을 기억할 것이다. 이제는 뉴욕 컨티넨탈 호텔 컨시어지를 통해 더욱 기억에 남게 된 배우. Omar로 기억되는 Michael Kenneth Williams (1966-2021)이 이태 전 세상을 떠났고, Lance Reddick이 올해 3월에 작고했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Lance Reddick과 더불어 The Wire의 흑막 중 한 명이었던 Jamie Hector를 Bosch 바로 곁에서 감상할 수 있다.

자, 이쯤 되면 Bosch,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Harry Bosch (Titus Welliver, Bosch, 2014-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