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11월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추운 겨울을 근근히 버텨내고 곧 따뜻한 봄을 목전에 두었지만
TS 엘리엇으로 하여금 전후 희망없는 암담한 현실이 오히려 4월을 잔인하게 보이게끔 만들었다고 했다.
전쟁으로 동료를 잃어버린 아픔을 투영하기 어려운 지금 세대에 있어서
여민 코트깃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결이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차가워져가고
아무리 눈을 비비고 찾아보아도 달력에 빨간 날 한 점 보이지 않는,
그런 의미에서 11월은 잔인한 달이다.
카버의 단편소설은 잔인한 11월과도 같다.
그것은 차곡차곡 소리없는 발걸음을 옮겨왔다.
그제와 같은 어제였고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이었지만
문득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니
입가에 걸린 흐릿한 팔자 주름에
살며시 흐려져가는 눈썹 언저리에
불행은 슬며시 내려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은
그 어떤 시끌벅적한 파티나 환희, 가슴을 어루만지는 미사여구, 하늘을 향해 쏘아올려진 폭죽이나 예고와는 거리가 멀었다.
슬며시 내려와 발 아래 쌓여간 11월의 불행한 검은 눈발과도 같았다.
그것은 특별하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었고, 모두의 주머니에 쉬이 한줌 들어갈만큼 작았으며,
아무도 원하지 않았지만 누구에게나 몫이 돌아갔다.